이희승 개인전 <주어진 기억의 나열들>
현대미술에 있어서 ‘기록의 예술’은 개인의 환경과 관계를 통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개인의 경험과 실천’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구축이 된다. 이러한 ‘기록의 예술’은 결과물보다 제작과정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종종 형태보다는 스토리가, 재현보다는 상황의 관여가 더욱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가는 단지 어떤 대상을 목격하거나 관찰하는 행위를 넘어, 예술가 자신이 탐구하는 주체(researcher)로서 기존 체제와 관계하고, 자신이 경험하는 것들을 취합하고 기록하며, 이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서로 다른 ‘기록’하는 방법은 임의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예술가 자신이 경험하게 되는 현실의 맥락을 구축하는 작업으로써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형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희승의 작업의 유형을 크게 세가지로 정리해 보자면 ‘불완전한 기억 (incomplete Memories)’, ‘지표로서의 기록 (record as an index)’, ‘분절적 재현 (disjunctive representation)의 흐름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개인 혹은 집단의 특정한 기억과 경험이 다양한 요소 – 내적 요소와 외부적 환경, 시간과 장소, 자의식과 타의식 등- 에 의해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경험한 것과 기억하는 것’, ‘현실과 가상’ 그리고 ‘진실과 허구’의 차이에서 심리적인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에서 오는 불안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의 시간들을 기록함으로써 극복하게 되는데, ‘기록’은 그 자체로서 수행하는 (perform)것이며 더 이상 순수한 정보의 운반체가 아니게 된다. 이희승은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이 어떠한 방식으로 객관화 되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만의 경로와 속도를 따라 흘러가는 정보의 통제에 참여하면서 다중적 소통의 형식을 찾아가고 있다.
이번 전시 《주어진 기억의 나열들》에서 소개되는 작품 <기억의 그래프>는 스마트폰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매일매일 신체의 활동을 기록하고, 그 데이터를 그래프로 변형한 뒤, 와이어를 이용하여 그래프의 형태를 오브제로 재현, 그 형태를 디지털 이미지로 촬영한 사진작업이다. 이 과정을 다시 정리해 보자면 신체의 활동 (물리적 실천), 어플리케이션의 데이터 (정보의 수집), 그래프작업 (1차적 기록), 와이어 오브제 (사물성과 재현), 사진촬영 (2차적 기록)이라는 다양한 기록의 방식과 재현의 유형을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최초 주체자에 의한 신체적 활동은 무의미 해지게 되며, 관객들은 만들어진 정보와 이미지에만 주목하게 된다. 작품 <뜻밖의 제안>에서 작가는 불특정한 시간과 상황 속에서 선택된 순간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보여준다. 재현되거나 발견된 사물들의 이미지는 종종 낯선 상황 속에서 관찰자의 합리적인 의식세계를 파괴하며 분절된 의식, 혹은 무의식의 재현을 시도한다. 초현실적으로 배열된 사물들의 우연한 기억의 시점을 공유할 때, 낯선고 어색한 상황은 신선하고 새로운 기억으로 재구성된다. 거울로 재현되는 나무상자 <기억의 형태>는 기억이 불완전하게 재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박스형태의 나무상자 안쪽은 전면이 거울로 되어 있으며, 파편화된 거울 조각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이 분절되어 재현되는 작업이다. 상자 안에서 다중 반사된 빛은 추상적인 형태로 상자 밖에 재현되는데, 이는 더 이상 완벽하게 재현하지도 파괴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준다. 이는 분절된 재현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고도의 긴장감을 유연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작품 <기억의 조각을 맞춰라-영화 제목편>은 작가가 관람했던 영화 164편의 제목을 분절하여 830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글자의 조각들을 모아둔 설치 작업이다. 관객들은 각각 분리된 음절조각의 모음을 접하면서 각각 경험했던 다른 영화의 제목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업에서 단어의 분절은 기억의 해체를 의미하며, ‘영화’라는 명확한 지시어를 통해 생성되는 새로운 기억의 조합들을 시도하였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들은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들을 제시하였으며, 최근 해체된 관점들에 주목하고 있다. 기억을 재현하고, 재현된 기억을 파괴하고, 파괴된 기억을 재구성하는 구조주의적 맥락에서 이희승의 개인적인 기억에 대한 작업들은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사회적 실천을 모색할 것이다.
<2016.9.18 미술비평 민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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