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쓰기에 대하여

나에게 읽기란 글자들을 읽고 또 읽으며 그것들이 해체되고 다시 합쳐지고 또 해체되는 것이 영원히 반복되는 상태를 말한다. 글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특히 손으로 쓰인 글자들은 제각각 멋대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생성되는 리듬은 결코 조화롭지 않다. 아니, 오히려 당혹스럽다. 이 불완전함. 그렇게 나는 변치 않는 결론을 환기한다.

책을 읽다 좋았던 부분을 작은 노트에 베껴쓰기 부터 시작했다. 끄적이듯 써 내려간 한 두줄이 노트 반페이지가 되고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다 결국 노트의 크기가 커졌다. 그렇게 베껴 쓰고 싶은 글의 양은 점점 늘어났다. 읽기 위해 쓰는 건지 쓰기 위해 읽는 건지 경계가 애매해졌다. 빈 종이를 가득 채워가는 과정은 나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필요로 했고 매일을 훈련하듯 썼다. 베껴쓰며 읽는 과정을 <깊게 읽기>라고 한다는데 나에겐 아무래도 쓰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았다. 그래서 <깊게 쓰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맞춤법이 틀리고 썼던 곳을 또 쓰고 어느 날은 글씨가 너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처음에는 이런 문제들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잘못 쓴 페이지를 찢어버리거나 쓰던 노트를 아예 바꿔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늘 같은 자리였다. 매번 정확할 수 없고 마음에 들 수 없어도 계속 써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저 내 마음에 들도록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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